취향 존중 영역 일단 샀으면 다 읽자

'호씨'로 칭해지는 한 인물이 제3자들에게는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악랄한 자로 입에 오르락거리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절대적으로 한 명의 피해자만 존재하는 이야기. 
 
캐릭터 개개인도 입체적으로 잘 만들어졌지만 이걸 차치하고서라도 플롯 자체도 굉장히 새롭고 완벽하게 짜여졌다. 일련의 사건들의 이음새가 참 매끄러움. 나는 사실 이 작품에서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게 각 챕터의 서두마다 호운의 ‘만행’을 서술했다는 점. 어떻게 이런 구성을 생각하셨을까...
 
읽으면서 나에 대해 정말 의외인 부분을 발견함... 호운이 너무 안타까움과 동시에 내가 공 편애자였나 싶을 정도로 고광윤의 마음에 대한 보답이 어느 정도 이뤄지길 원했다는 거. 외전에서 고광윤이 하도 절절하게 후회하길래 이쯤 됐으면 호운도 과거를 조금만 덜어내고 그 마음에 답을 해주면 안 되겠나 싶었다. 근데 한편으로는 호운의 그 안타까운 세월들이 아른대서... 도저히 사랑은 내주지 못하겠다 하는 말도 백 번이고 이해가 됐다. 강탈당한 과거의 시간은 그 누구도 되돌려줄 수 없으니까.
 
고광윤은 호운의 인생이 파멸까지 가게 된 궁극적인 원인이지, 절대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그런 부모에게서 태어나면 안 됐고 그런 의붓아버지, 부인 등을 만나면 안 됐다고 보기에. 그래도 당연히 호운의 인생을 일정기간(어쩌면 평생) 앗아간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고...
 
고광윤이 외전에서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것처럼 후회하긴 하지만,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까지 이기적일 수 있나 싶은 사람이다. 사랑하게 해달라, 사랑해달라 외치는 것부터가 이미 양심따위 내던진... ‘아니, 명색이 공인데 이 정도도 못 바라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고광윤은 양심리스인 게 맞음. 근데 난 왜 이걸 알면서도 호운이 고광윤의 마음에 그냥 응해주길 바라는 건지...ㅠㅠ 호운이 자기혐오로까지 귀결되는 그 복잡미묘한 마음에서 해방됐으면 싶고, 고광윤도 뒤늦게 자각한 진심에 보답받았으면 싶고...ㅠㅠ 물론 이러나저러나 이 둘의 관계의 정의는 호운이 정립하는 게 맞고, 호운의 생각이 곧 정답이긴 하다...
 
그리고 <호가지록>에서 나름대로 빼놓을 수 없는 한 분... 서융...ㅠㅠㅠㅠㅠ 나는 호운 곁에 남은 게 서융이었다면 같은 마음을 되돌려받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고광윤과는 다르게 호운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줬을 것 같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 근데 호운이 그토록 원치 않던 고광윤과의 우연이 몇 번이고 발생하는 반면에 융과는 없는 걸 보면... 확실히 호운이랑 고광윤이 운명이긴 한 것 같.....ㅎ... 무튼 서융도 잘 살면 좋겠다.
 
호운과 고광윤은 결국 평생을 서로의 곁에 살다가 갔는데, 어떤 식으로든 각자의 공허함이 좀 채워졌었길 바란다... 사랑이 존재해서는 안 되는 관계지만 필요악 같은 사랑도 괜찮지 않...을까...?^^ 그냥 여생을 함께 하긴 했다는 거에 만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