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존중 영역 일단 샀으면 다 읽자

최소 5~6권 상당의 분량으로 탈고해주셔야 됐다고 본다. 이렇게 재밌는데 외전 포함 2권은 말이 안 되잖아요 ㅠㅠ

─어디야?
“네 관사.”
─…….
“……아니, 우리 관사.”

내가 생각하는 모연흔은 미친놈과 그 미친놈 옆에서 점점 미쳐가는 놈의 사랑 이야기. 일단 의진이가 소심하거나 유약한 성미가 아니어서 존나 다행인 듯. 상황과 대조되는 덤덤한 서술에도 불구하고 속이 꽈악 막혀오는데... 만약 의진이가 유리멘탈 설정이었으면 이게 그대로 녹아든 문체로 이야기가 진행됐을 테니 진짜 읽기 힘들었을 것 같음. 작가님이 의도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이 내내 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이거 해경이 시점이었으면 어딘가 쎄한 로코물로 보였을 거다...
 
근데 이 소설은 참 신기한 게 처음 읽을 때는 의진이가 너무 안타까워서 울화통이 치미는데 두 번째부터는 해경이에게 마음이 쓰였음... 다름이 아닌 '틀린' 방식이어도 그 마음에 절대 흔들리지 않는 진정성이 존재하긴 해서...? 해경이가 겉으로나마 일반적인 범주에 속해줬다면 의진이한테 해경이보다도 더 큰 마음이 솟아났을 것 같기도 하다.
 
웬만해서는 굳이 공을 분석하지 않는데 해경이는... 해경이는...... 얘는 '문제'라는 개념에 대한 인지 자체가 0에 수렴한다. 인지 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애당초 그게 '왜' 문제인지를 모르고, 알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인물. 본인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 게 없으니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다. 이렇듯 중간 없는 사람이 드물게 의진이한테는 일정 부분 맞춰줄 때가 있긴 하지만 이 또한 철저히 해경이의 기준일뿐더러 결국 여전히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났으므로 유의미한 결과를 낳진 않는다.

나는 정해경에게 물었다.

“내가 다치는 게 싫다며?”

해경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물었다.

“내가 다치는 게 싫다며?”
“그래.”
“내가 다치는 게 싫으면, 네가 다쳐야지. 네 사랑은 고작 이 정도야?”
“그만해, 좀.”
“그만해? 그게 네가 할 말이야?”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이 작품에서 제일 충격적인 장면이었음. 모순적인 표현이지만 끝이 없는 파국을 본 느낌. 의진이는 과격한 방법으로 해경이의 사랑을 의심하고 비웃게 됐다. 그렇지 않으면 미치니까, 또는 이미 미쳐서 할 수 있는 행동이거나. 으름장에 가깝긴 하지만 정해경의 “그만해, 좀.”이 얼마나 이질적인지는 모두가 알지...
 
정해경 스스로도 사랑을 느끼는 그 맥락을 설명하지 못하고, 본인의 사랑을 표출하는 방법도 틀렸지만 사랑은 사랑이라고 본다. 갑분철학이지만 나는 사랑이 그런 거라고 생각해서.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절대 그 의미를 획일화시킬 수 없고 형용할 수도 없는.
 
평행선에서 각자 열심히 달릴 둘. 의진이가 모든 걸 내려놓고 전적으로 해경이에게 순응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의진이가 초반의 내 생각과는 다르게 성깔 있고 능동적이고 주관도 뚜렷한 사람이어서... 아마 해경이의 그 인류애를 상실한 애정표현에 완벽히 동화될 날은 평생 안 오겠지. 그러게 모바일뱅킹 시대에 왜 굳이 은행까지 가서 납부하려고 해서...
 
+ 정해경 문자 스타일 존나 귀엽다... 너 그거 반칙이야...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