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존중 영역 일단 샀으면 다 읽자

정신병 안 걸릴 수 없는 환경에 처해진 예민한 수가 혼자 씩씩대는 찌통물이 보고 싶은 날에 읽기 딱 좋다. 씩씩대다가 마지막 불꽃마저 다 타버리고 남은 재의 버석함이 느껴질 때가 가장 좋은데, 이게 2~3권에 있어서 나한테는 1권보다 나머지 두 권이 더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작가님이 김윤오의 점차 버거워지고 붕괴되어가는 심리를 너무 잘 쓰셨는데, 그 절정이 3권에서 드러난 것 같아서 유독 3권이 더 유의미하다고 생각함. 내가 벨 보면서 울었던 작품은 하나밖에 없는데 3권에서는 나름대로 눈가에 눈물도 고였음...

신기한 게 김윤오는 욕 잘하고 주먹 잘 쓰는 미남수인데도 계속 연약수나 미인수로 상상돼서 혼자 스트레스... 이런 수 존나 안 좋아해서 굳이 미남수 일러스트까지 검색해가면서 봄. 더 신기한 건 공부를 지지리도 못하는 수가 꼭 전교 1등처럼 느껴져서 어이없었음... 혹시 나만 이렇게 느꼈나?

장태승이 별로라는 의미는 아닌데 아무래도 이 소설은 수 존재감이 압도적으로 크다. 사실 공이 나와도 그만 안 나와도 그만인 수준이었...던 것 같긴 한데... 물론 김윤오에게는 장태승이라는 바다가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그 바다로서 필수불가결한 존재이긴 하고, 거듭 말하지만 장태승이 심심한 인물은 전혀 아니다. 태승이는 죄가 없다... 그저 김윤오의 눈으로 진행되는 이 이야기에서 그 머릿속이 너무 소용돌이로 가득 차 내가 다른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기 때문... 언제 어떤 식으로 발화할지 모르는 김윤오의 태풍의 눈 속에 자진해서 들어가 전적으로 을을 자처하는 장태승의 아가페도 좋긴 했다. 유해한 삐딱함마저 다정하게 안고 가는 장태승 최고...
 
그리고 최슬기는 작품 내내 독자 괴롭히는 빌런인 줄 알았는데 존나 좋은 친구였던 것... 새어머니도 내심 흑막 아닌가 싶었는데 끝까지 너무 현명한 사람이었다. 김윤오에게 우울의 뿌리를 내린 친엄마보다도 더 낫지 않나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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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윤오가 마음이 죽기를 기다린다고 했을 때부터 가슴에 콕 박혔었는데 이 말이 2권에서 이런 식으로 곱씹어질 줄은 몰라서 좀 멍했었다... 내가 이 작품에서 제일 좋아하는 대사 ㅠㅠ

태승이에겐 미안하지만 윤오의 종잡을 수 없는 자기파괴적인 생각에서 기인한 저 감정기복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태승이 참 좋았음...

작가님께서 연탄을 일종의 상징으로 삼고 기어이 그 상징을 부숨으로써 새로운 장으로 넘어가는 흐름 구상하신 거 진짜 최고시다

 
이후로 윤오가 과연 오롯이 술을 끊었을지, 수면제 없이도 잠에 들지, 자기혐오에서 벗어났을지 궁금하긴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설령 윤오의 우울이 심해와 같다고 해도 그 심해가 결국 장태승이라는 바다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