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존중 영역 일단 샀으면 다 읽자

미친... 반나절 만에 홀린 듯이 다 읽었다. 등장하는 캐릭터는 비현실적인데 전개는 아주 현실적이다... 방법을 몰랐던 쫄보 이교현이 서희에게 단 한 번만이라도 물어봤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고, 사실 실제로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이자 끝은 '대화'이기도 하니까.

으레 후회물에서는 남주가 신뢰를 저버렸음에도 여주가 이 신뢰의 근본적인 부분을 따질 새도 없이 그냥 남주의 고생 몇 번 눈물 몇 번에 내심 속상해하다가 넘어가는 전개인데, 여기서는 오해에서 기인한 배신이 얼마나 큰 불신을 낳는지 그리고 다시 회복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끊임없이 서술된 게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 그 오해도 오만함이 아닌 되레 바닥에 처박힌 자존감에서 그릇된 싹을 틔운 거여서 좋았고. 교쪽이의 속죄를 바라보는 서희의 소용돌이치는 내면이 굉장히 거듭해서 나오는데, 원래 전하고자 하는 바가 같은 내용이 반복되면 루즈해지기 십상인데 작가님 필력이 너무 좋아서...

내가 씨씨님 작품은 이것까지 고작 2개만 봤는데 일단 작가님 특징 하나는 분명히 알겠다. 깡마른 여주를 엄청 좋아하신다. 그래도 <불행의 기원>에서의 희수 체형 묘사보다는 내 뼈가 덜 아팠음... 그리고 이분은 남주들 구를 때 여주들이 아주 현실적인 감정선으로 대응하게 만들지, 절대 내심 속상해하게 하지 않음. <불.기>에서 차치헌이 희수한테 천혜향 사주려던 장면 볼 때도 와... 이렇게까지 하신다고? 싶었는데 여기서도 서희가 교쪽이한테 니가 뭔데 피해자인 양 구느냐고 악에 받쳐 소리 지를 때 쾌감 느껴졌음... 근데 완급조절까지 잘하시는 게 마냥 '남주'라는 이유만으로 독자가 무력하게 용서하게 설계하진 않지만, 동시에 '남주'이기에 설명되는 이유와 서사는 적절히 부여해준다. 남주 대접은 또 잊지 않고 잘해주심. 당사자 의사는 철저히 배제된 채 생겨난 오해 때문에 내 진심이 외면당했다는 걸 알게 됐을 때의 그 절망감과 비통함을 너무 잘 표현했는데, 또 왜 외면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풀이도 거부감 들지 않게 곁들였다는 게... 하긴 근데 이게 생략되면 그냥 한남문학이긴 함 ㅎ

그리고 얘네 결혼하기 전에 만나던 장면들 너무 귀엽고 예뻐서 뭔가 아련했다... 1권 극초반 볼 때는 애정이라고는 전혀 없이 어떠한 조건에 의해서 결혼한 사이인 줄 알았어서 나한테는 반전이기도 했다. 둘이 연애하던 시기는 교현이 시점으로 보는 게 더 잘 와닿는 듯. 달달한 거 싫어하는데도 고고한 이교현이 무슨 적국의 공주한테 함락당하는 것마냥 서희를 향한 사랑을 자각해가는 그 혼란하고 진심 어린 묘사가 너무 좋아서 형광펜 존나 그어놨다... 웃기게도 19금 딱지 붙은 로설 보면서 사랑이 뭐고 자존심이 뭐고...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 것도 처음인 것 같다.

하루 만에 신간 다 읽은 것도 오랜만인데 용두용미로 끝나서 너무 만족. 훗날 나오(겠지...?)는 외전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본편에서는 끝내 재혼과 임출육이 안 나온 점, 여전히 회장이 서희 멸시하는 점 등이 이 작품의 정체성을 잘 설명해준다고 보고, 작가님이 끝까지 지켜낸 것 같아서 퍼펙트하다. 내친 김에 다른 작품도 읽어볼까 싶고...
 
추리고 추렸는데도 발췌가 너무 많음 ㅎ...

 

더보기

하... 나도 서희가 대체 뭘 어쨌길래 이교현이 이러는지 너무 답답해서 ㅠㅠ 제발 말 좀 하라고 이 새끼야

남자 비주얼은 다르지만 정*진 부회장이랑 고*정 배우님 이야기 생각났음...

넌 서희라면 그냥 다 좋잖아 ㅎ 하면서 코웃음 쳤는데 바로 나오는 씬 보면서 아... 그래 불만족스럽긴 했겠다... 생각함

씨씨님 진짜 (좋은 의미로) 미치셨구나 싶었던 부분... 어떻게 이런 묘사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교현은 절대 비굴한 남자가 될 수 없는데 모순적이게도 너무 걸맞은 표현이었음

이교현의 이기적인 자책 때문에 괴로운 서희가 너무 안타까웠음

우는 게 이교현이고 당황하는 게 서희다

작가님 제목을 이런 식으로 풀어주시면  저 어떡하라고...

<쏘 롱, 서머>에서 우진하가 속죄하는 것도 뵈기 싫었는데 이교현도 마찬가지였음... 결국 여주들한텐 이기적인 거잖아

다시는 사랑을 믿지 않고 두 번은 하지 않으리라 결심하는 서희

다시는 서희를 놓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이교쪽,,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디

이거 머릿속으로 상상해봤는데 내가 네티즌이었으면 그 짤 하나로 한 10년은 포타 쌉가능...^^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기서 존나 울컥함

외전... 외전 주세요